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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의 독서이력


[아이뉴스24 민병무 기자] 누군가의 독서이력(讀書履歷)을 살펴보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인디아나 존스’급 탐험이다. 소주잔을 1박2일 동안 기울이지 않고는 속마음을 알 도리가 없지만, 짧은 시간에 속내를 효과적으로 알아채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읽은 책을 훑어보는 것이다. 지금 그 사람의 머리에 무슨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는지 ‘감(感)’을 잡을 수 있다. 100% 적중하지는 않지만 60~80%에 근접하는 답을 얻는다.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은 현직 은행장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SNS 활동을 한다. 한 기관의 사령탑으로서 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관련한 콘텐츠를 올려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공식적인 홍보 라인을 가동하면서도, 이에 더해 가외로 셀프PR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그가 지난 6월 초부터 행사 참석, 점포 오픈, 업체 미팅 등 페이스북에 올리던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올스톱했다. 그 대신 최근 읽은 9권의 책에 짧은 소감을 붙인 글만을 게시했다.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이 19일 군산산단지점 방문해 직원들과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행장은 이날 군산산단지점을 방문을 마지막으로 국내외 691개의 모든 점포 방문을 마무리했다. [기업은행 제공]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이 19일 군산산단지점 방문해 직원들과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행장은 이날 군산산단지점을 방문을 마지막으로 국내외 691개의 모든 점포 방문을 마무리했다. [기업은행 제공]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가 지은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도 눈길을 끈다. 특히 ‘현명한 대답’이라는 제목의 문장이 그의 가슴 속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현명한 대답이다. 손보다 혀가 더 많이 휴식하게끔 하라. 침묵은 무지하고 무례한 이에 대한 최고의 대답이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 후회스러운 일이 백 가지 중 하나라면,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해버려 후회스러운 일은 백 가지 중 아흔아홉이다.” 곱씹을수록 영양가가 우러나온다.

김 행장은 ‘생각의 차이가 일류를 만든다(이동규 저)’도 강추했다. 정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온 몸에 쏙쏙 스며든다고 치켜세웠다. “검색보다 사색이다. 리더는 미래지향적이어야 하며, 양치기 개가 되어야 하고, 또한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을 가져야 한다. 양치기 개는 언제나 뒤에서부터 이끌어야 하고, 시끄럽게 짖어대는 것은 괜찮지만 절대로 양을 물어서는 안 되며, 또한 양을 한 마리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미시간대 프라할라드 교수의 세 가지 리더십 덕목)” “조직은 제1인자의 고민을 먹고 자란다.(교세라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 등의 혜안을 올렸다. 그러면서 실패한 경영자 연구의 공통점 중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항목이 바로 ‘조직원의 헌신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라며, 역시 경영이란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기술이란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고 덧붙였다. 미래의 CEO를 꿈꾸고 있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김 행장은 이밖에도 ‘대변동(제레드 다이아몬드 저)’ ‘일본회의의 정체(아오키 오사무 저)’ ‘초예측(오노 가즈모토 저)’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짐 로저스의 어떤 예견(오노 가즈모토·전경이 역)’ ‘탈무드-새벽에 읽는 유대인 인생 특강(장대은 저)’ 등에도 엄지척 찬사를 보냈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왜 김 행장이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신변잡기 페북 활동을 멈추고 이처럼 책 이야기를 풀어놓았는지 이해가 된다. 그는 오는 12월 27일로 3년간의 은행장 자리에서 내려온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수장은 금융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정부 지분이 절반을 넘는 53.24%에 달하는 만큼, 통상 행장 선임엔 정부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 행장은 지난해 1조764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역대급 실적 축포를 쏘아 올렸다. 서프라이즈의 사나이가 됐다. 이 때문에 올해 초부터 연임설이 흘러나오기도 했지만 현재로서는 새 얼굴의 등장이 점쳐진다. 지난 2016년 12월 박근혜 정부 말기에 취임한 탓에 ‘전임 정부의 사람’이라는 약점이 부각됐고, 그동안 연임한 사례는 정우찬·강권석 단 두 명에 불과해 다시 행장실 입성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분위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다. 그래서 지난 여름부터 페북을 멈추고 자중 모드에 돌입했다. 일거수일투족이 씹혀 조직에 누가 되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 조용히 내면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떠나가야 할 때를 아는 베테랑의 품격이 느껴진다.

어쨌든 이번 기업은행 인사의 핵심 포인트는 행장이 ‘집안’에서 나오느냐다. 만약 내부 승진으로 차기가 결정되면 2010년(23대 조준희), 2013년(24대 권선주), 2016년(25대 김도진)에 이어 4대 연속 내부 출신 사령탑을 배출하게 된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는 만큼 일부에서는 내부 발탁 이후 조직 내 파벌싸움만 커졌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외부인사 수혈 역시 욕을 먹고 있는 형국이다. 유광열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정은보 한미 방위비협상 수석대표, 최희남 한국투자공사(KIC) 사장, 전병조 전 KB증권 사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에서는 ‘낙하산은 수용할 수 없다’며 경계하고 나섰다. 물망에 오른 사람 모두가 과거에 기획재정부에 몸담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쯤되니 행장 인선이 관료들의 채용박람회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사, 그게 참 어렵다.

딱 한 달 뒤에 방을 빼줘야 하는 김 행장은 홀가분한 모습이다. ‘임기 내 모든 영업점을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임 초의 약속도 지난 19일 지켰다. 김 행장은 이날 군산산단지점 방문을 마지막으로 국내외 691개의 모든 점포를 방문했다. 그는 “고객과 현장이 경영의 가장 중요한 축이다”라며 ‘문견이정(聞見而定·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난 후 싸움의 방책을 정한다)’의 자세를 줄곧 강조해왔고, 완벽한 미션 클리어(Mission Clear)를 수행했다. 3년간 만난 직원은 모두1만2478명, 영업점 방문을 위해 이동한 거리는 12만5024㎞다. 지구 세바퀴를 넘게 돈 셈이다. 이를 위해 142회 출장을 갔고, 1박 2일간 18개 지점을 연달아 방문한 적도 있다.

기업은행의 총자산은 2010년 163조4000억원에서 2018년 260조8900억원으로 100조원 가까이 늘었고, 특히 기업에 대출한 자금은 2010년 6월 89조4200억원에서 2019년 6월말 164조5600억원으로 84.04%나 증가했다. 외형 성장과 함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튼튼한 조직이 됐으니, 누가 오든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1)Humility(겸손)-고개를 숙일 때마다 성장한다. (2)Authenticity(진정성)-언제나 진정으로 대한다. (3)Service(서비스)-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이해한다. (4)Empathy(공감)-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안다. (5)Courage(용기)-조직을 위해 나설 때를 안다. (6)Collaboration(협업)-혼자 일하지 않는다. (7)Innovation(혁신)-변화를 이용할 줄 안다. (8)Curiosity(호기심)-평생이 배움의 과정이다. (9)Storytelling(스토리텔링)-비전을 스토리에 담아 전달한다. (10)Legacy(유산)-마지막에 가장 소중한 것을 남긴다. 김 행장은 페북에서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존 헤네시 저)’를 소개하면서 거기에 나와 있는 10가지 마음가짐을 적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글이다. 그는 지금도 이것을 모두 실천하려고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설령 어떤 항목은 행동이 따르지 못했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꼭 조직에 몸담고 있을때만 필요한 지표가 아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하나씩 차근차근 완수하면 될 일이다. 혹시 누가 김 행장의 바통을 이어받을지 모르지만 내일의 기업은행장에게 들려주는 팁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앞날에 남아 있으니, 그의 새 출발을 응원한다.

/민병무 금융부 부국장 min6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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