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 입니다. 사업개시 5년여만에 G마켓을 국내 최대 오픈마켓 사이트로 일궈낸 G마켓 구영배 사장의 사업 이야기는 영혼을 쏟는 집념만이 성공의 열쇠임을 다시금 확인해준 인터뷰였습니다.
구 사장이 추천한 123번째 릴레이인터뷰 주인공은 국내 휴대폰결제시장 부동의 1위 기업인 모빌리언스 황창엽(46) 사장입니다.
"굉장한 에너지와 열정을 가진 CEO입니다. 앞으로 세계 모바일결제시장에서 큰 역할을 할 겁니다." 두 사람은 업종은 다르지만, 비즈니스파트너로 가끔 만나는 사이라고 합니다.
모빌리언스 황창엽 사장이 어떻게 모바일결제 사업을 키워왔는지,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의 창업이야기를 소개합니다.
IT강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최고의 경쟁우위를 보이고 있는 분야는 과연 얼마나 될까?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벤처산업계의 경우, 크게 게임, DVR 등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갖춘 분야는 그야말로 손꼽을 정도.
국내 전문벤처기업이 주도하는 한국산(産) '휴대폰 결제' 서비스가 세계 시장을 주름잡을 제 2의 글로벌 '블루오션'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국의 휴대폰 결제(PG)업체들이 독보적인 기술력과 노하우를 앞세워 세계 휴대폰 결제시장을 서서히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결제'란 휴대폰으로 결제한 금액을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이 과금하면, 이들 통신회사로부터 판매대금을 넘겨받아 고객사(상품판매업체)에게 수수료를 떼고 지급해주는 사업.
통신회사로부터 받은 결제대금을 판매사업자에게 정확하게 지급하는 기업신뢰도가 사업의 핵심이다. 모빌리언스는 이런 휴대폰결제시장 국내 1위 기업.
상대방을 배려하고, 늘 유쾌한 분위기로 이끄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돋보인다. 황 사장은 매우 탄탄한 경영수완을 자랑한다. 험한 벤처무대에서 8년여간 산전수전 다 겪은 뒤 자연스레 몸에 벤 생존본능이 느껴진다.
실제 황 사장은 매우 안정감을 주는 CEO다. 기존 사업포트폴리오구축이나 중장기 사업비전, 그리고 글로벌사업과 전체적인 자금운영 등등에 관한 한 그는 매우 보수적인 접근방법을 고수한다.그의 경영스타일은 늘 신중하다.
회사의 유동성이 수백억원대에 달해도 모바일결제사업을 벗어난 외도를 한적이 없다. 원칙이란다. 결코 쉽지않은 절제력을 보여준다.
NHN, G마켓, 옥션 등 국내 대표주자들을 주고객으로 끌어들인 영업력 또한 간단치가 않다. 창업 8년차답게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풍부한 경험이 우러난다.
모빌리언스는 2000년 3월 설립된 휴대폰결제 전문기업. 2004년말 코스닥에 입성했다.지난해 400억원, 올해엔 500억원의 매출을 낙관한다. 내년 목표는 700억원대.
올 2월 미국 유일의 유선전화결제서비스 회사인 페이먼트원사와 계약을 맺고,미국시장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 운명적으로 다가온 빌링(Billing.과금)
황창엽은 1989년말 LG전자 인턴사원으로 입사하면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다. 그가 맡은 일은 LG그룹 재무업무. 그룹 전체의 조단위 자금운영과 법인세 등 그룹 재무흐름을 한눈에 파악할수 있는 요직중의 요직이었다. 그에겐 엄청난 기회였다.
입사 2년만에 샐러리맨 출세가도의 '보증수표'인 회장비서실 스텝으로 일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있었지만, 실무에 집중했다. 그는 기회를 잡아 샐러리맨으로 출세하겠다는 '샐러리 올인' 스타일이 아니었다.
국제회계도 그의 주된 업무였다. 해외법인 설립시 해외 매출을 처리하는 이른바 '돈받는 시스템(빌링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매우 중요했고,황창엽이 그 일을 맡았다.
황창엽은 이때부터 과금시스템분야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기 시작했고,이때의 경험은 그가 훗날 국내 최고수준의 빌링전문가로 발돋음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흘렀다.하지만 재무업무는 그에겐 늘 불편한 옷이었다.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하는 업무속성상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던 것.
"다른 사람들을 깨고(비판한다는 의미),채근하는게 너무 힘들더라구요.갈수록 회의감이 커졌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해외근무.
1994년말, 해외지역 전문가 선발에 도전한다. 하지만 선발과정에서 남은 최종 2명중 한명이 바로 자신이 모시고 있던 과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중도 포기한다.
황창엽의 인생역정은 이때부터 급물살을 타게된다. 직속 상관과의 경합으로 꿈꾸던 프랑스행을 접어야했던 기막힌 사연은 그로 하여금 사업가의 길로 빠르게 재촉하는 결정타가 된다.
1995년 2월, 하이텔의 빌링시스템을 구축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황창엽은 한국통신하이텔로 자리를 옮긴다. LG에서의 임원 승진은 그의 비전이 아니었다. 주저함없이 사표를 던진다.
"대기업에서의 안정된 자리는 별 관심이 없었던 같아요. 대신 뭔가 일선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조단위를 주무르던 그에게 고객당 1만원씩 받아 연매출 200억원대인 하이텔 빌링은 그야말로 '초미니' 규모였다.
그는 2년간에 걸쳐 하이텔 빌링시스템 개편을 주도한다. 그는 이때부터 빌링시스템의 잠재력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고객 한명당 몇 만원씩 받는 비즈니스가 의외로 매우 포텐셜이 크다는 점을 느낀 것도 새삼스럽지만, 모든 e비즈니스의 성공이 빌링시스템을 여하히 성공적으로 구축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몸소 터득하는 중요한 경험을 한다.
NHN의 한게임이나 네오위즈의 아바타거래 등등이 모두 빌링시스템을 제대로 갖췄기 때문에 돈을 벌수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빌링시스템의 핵심은 고객이 돈을 내고 싶을 때 쉽고 편하게 낼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로든 신용카드결제든, 계좌이체든 모든 프로세스가 이용자측면에서 편해야 합니다."
황창엽은 하이텔 빌링업무를 하면서 증권정보, 각종 커뮤니티, 유료정보서비스 등 무궁무진한 온라인 비즈니스세계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2년여간 PC통신 빌링시스템구축에 전념해온 황창엽은 1997년 PCS서비스가 시작되면서 휴대폰 빌링이라는 보다 큰 스케일의 빌링시스템에 뛰어든다.
1997년초 한솔PCS로 옮긴 황창엽은 그후 4년간 휴대폰 빌링시스템을 매만진다. 200만 고객, 연간 매출 1조원을 넘어서는 메머드급 빌링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개발, 구축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황창엽의 운명은 대기업 휴대폰회사 빌링책임자로 묶어두지 않았다. 1999년말, 통신빅뱅이 시작되면서 황창엽의 행보는 빠르게 창업의 길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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